데릭 로즈가 남긴 커리어의 진한 의미

MCW 스포츠 센터에 따르면, 데릭 로즈는 커리어 마지막 시즌을 멤피스에서 존재감 없이 보냈다. 부상 여파로 단 24경기 출전에 그쳤고, 경기장 안팎에서 젊은 선수들의 멘토 역할도 하지 못했다. 지난 시즌의 멤피스는 모란트를 포함한 주전 대부분과 로테이션 자원까지 모두 부상에 시달렸지만, 로즈는 그 와중에도 크게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쓸쓸한 모습과 달리, 16년 전의 로즈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바로 같은 도시인 멤피스 대학에서 팀의 주전 포인트가드로 활약하며, NCAA 정규 시즌을 33승 1패로 이끌고 전미 챔피언십 결승까지 진출했다. 특히 ‘미친 3월’ 무대에서는 평균 21.6득점 6.4리바운드 7.0어시스트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겼다. 비록 결승전에서 극적인 연장전 패배를 당했지만, 그 순간 로즈는 이미 2008년 NBA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낙점된 상태였다.

시카고 출신으로 고향 팀에 입단한 로즈는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루키 시즌부터 평균 37분의 출전 시간을 받으며 핵심 전력으로 떠올랐고, 이듬해 플레이오프에서는 디펜딩 챔피언 보스턴 셀틱스를 상대로 7전 7연장에 걸친 혈투를 벌였다. 그 시리즈 1차전에서 로즈는 보스턴 원정에서 36득점을 터뜨리며 전국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로즈는 급속도로 성장했다. 2년 차에는 올스타에 리저브로 선발되었고, 3년 차에는 평균 25득점 7.7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만장일치로 올스타 주전과 정규 시즌 MVP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팀은 정규 시즌 62승 20패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성적을 거뒀고, 로즈는 NBA 역사상 최연소 MVP 수상자가 되었다. 그가 남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으며, 당시 그의 활약은 노동 협약의 ‘로즈 조항’이라는 이름으로까지 이어졌다.

이 조항 덕분에 루키 계약 기간 중 MVP 등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낸 선수는 연봉 상한선의 30%까지 재계약이 가능해졌다. 이후 케빈 듀란트, 블레이크 그리핀, 폴 조지, 앤서니 데이비스, 루카 돈치치 등 수많은 스타들이 이 조항의 혜택을 받았다. 하지만 로즈 자신도 몰랐던 것은, 그 눈부신 절정이 2011년 단 한 해로 끝나버릴 줄은 아무도 몰랐다는 사실이다.

이듬해 로즈는 단축 시즌 동안 27경기를 결장했고, 플레이오프에서는 심각한 무릎 부상을 당했다. 이후 복귀했지만 반대쪽 무릎마저 부상을 입으며 2년 연속 시즌아웃. 양쪽 무릎의 부상은 그의 폭발적인 운동능력을 완전히 빼앗아 갔다. 트레이드마크였던 ‘감속 없는 방향 전환’과 ‘꼬아 넣는 레이업’은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시카고에서의 입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팀의 리더 역할도 지미 버틀러에게 넘어갔다. 2016년 로즈는 뉴욕으로 트레이드되며 시카고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이후 그는 닉스, 클리블랜드, 미네소타, 디트로이트, 멤피스를 전전하며 점점 리그의 중심에서 멀어져 갔다. 어느덧 그는 36세를 앞둔 베테랑이 되었고, 새로운 세대인 커리, 하든 등 보다 전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후배들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게다가 리그 전반에 퍼진 ‘스몰볼’과 3점 위주의 흐름 속에서, 슛에 약점이 있는 가드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MCW 스포츠는 이러한 환경적 변화 역시 로즈의 존재감을 약화시킨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그가 은퇴를 선언한 지금, 그의 커리어가 남긴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로즈의 전성기 장면들은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인상 깊게 남아 있다. 스스로의 돌파 하나로 수비진을 무너뜨리고, MVP에 오르며 동부 결승까지 팀을 이끌었던 그 시절은 이제는 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했던 시대였다. ‘장미는 시들었지만 향기는 남는다’는 말처럼, 데릭 로즈의 이름은 여전히 NBA 팬들의 가슴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댓글 남기기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